대한민국의 학력·학벌에 대한 인식은 근대교육의 등장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94년 관립교동소학교가 개교*하고 1899년 1회 졸업생을 배출**로 도제식 교육방식으로 부터 근대적 교육기관에 의한 교육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까지 근대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1919년 조선인의 인구가 1,700만 명이었던 상황에서 보통학교(3~4년제) 학생 수는 484개 학교, 84,000명에 불과했고*** 고등보통학교(5~4년)와 실업학교는 28개 학교 3,800명이었다. 일제시기(1936년) 평균수명이 42.6세****임을 감안하면 초등교육학령인구의 5%에 못 미치는 사람이 초등교육을, 중등교육대상자 중 0.2%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 중등교육을 받은 셈이다. 조선총독부는 1929년부터 일면일교제(一面一校制)를 추진하여 초등교육을 확대*****하였으나 소수만이 그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근대교육을 받은 사람이 소수인 환경에서는 초등교육만 받아도 선호하는 직업을 가질 기회가 있었으며 이는 곧 초등학교 입시경쟁으로 이어졌다. 1935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초등교 입학을 위한 “시험지옥”이란 표현이 등장해****** 당시 초등학교 입시경쟁을 가늠하게 한다.
초등교육 수혜자의 확대는 점차 상급학교 입시 난으로 옮겨갔다. 하급학교 교육의 수혜자의 확대는 곧 해당 과정 졸업생에 대한 희소성이 사라짐을 의미하고, 이는 선호직종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력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하급교육과정 수혜자의 확대는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경쟁의 심화로 이어졌다. 이를 반영하듯 1938년 조선일보에는 초등학교교육 현장에서 중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우수학생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하는 사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 서울교동초등학교 홈페이지 https://kyodong.sen.es.kr/78970/subMenu.do
** 정재걸, 이혜영, 한국 근대 학교교육 100년사 연구(I), 한국교육개발원, 1994, p.3.
*** 한국 근대 학교교육 100년사 연구(II): 일제 시대의 학교 교육, 이혜영, 윤종혁,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 1997
**** 통계로 본 80년/평균수명 60년새 30년 늘어,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00331/7521641/1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02_0060_0020_0020
****** 一面一校完成後라도 學齡兒收容不過三割, 동아일보, 1935.11.05. p.5.
******* 優劣差別敎育은不可, 조선일보 1938.1.19.,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