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는 학력에 대한 열망에서 학벌에 대한 열망으로 이동하는 시기였다. 즉, 1980년대까지 학생들의 꿈이 대학진학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폭적인 대학생 수의 증가에 기인한다.
1967년 초등학교 1학년 학생수는 1,050,728명이었고,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1979년의 대학 입학자 수는 99,270명으로 약 9% 정도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정원제의 시행으로 1981년의 대학 입학자 수는 179,935명으로 늘어났지만,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1969년 초등학교 1학년 학생 1,013,593명이었던 점을 참작하면 약 18%만이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난다.
1971년 중학교 입학시험이 완전히 폐지*되고, 1975년부터 고교 평준화가 시작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중학교 졸업자라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여전히 심했기 때문에 교육문제의 주요 이슈로 대두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낮은 대학 진학률은 대졸자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는 것을 수월하게 작용하였고, 이는 곧 대학진학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누구나 갖게 된 고졸 학력은 이제는 선호하는 직업을 갖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학진학에 대한 열망이 매우 높았다.
대학 진학률에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은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다. 김영삼 정부는 입시지옥을 해소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기치 아래 대학설립 및 인가를 쉽게 하고 대학 정원을 대폭으로 늘리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정책으로 마련된 법령을 바탕으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우후죽순으로 대학이 설립되고 정원이 확대되어 고졸자라면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고등학교를 졸업자라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자 이제는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명문대 진학을 위한 열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진학 자체가 어려웠던 까닭에 일·이류 대학 정도로 구분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는 ‘SKY’, ‘인서울’, ‘듣보잡’ 같은 대학의 등급을 나타내는 신조어가 대거 등장하였다. 이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진학할 수 있게 된 대학의 졸업장은 더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 판단된다.
인재를 선발하는 인사 부처의 입장에서도 90년대 이전까지는 서류심사에 있어서 학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변별력을 제공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출신학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中學入試제도廢止, 동아일보, 1968.7.15., p. 1.